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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당하면 못할 일 없다. 궁지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한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헤쳐나가는 길밖에 없다. “난 그건 거 못해요”할 때는 팔자 좋을 때 얘기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죽기 살기로 덤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운동이다. 제일 좋아하는 건 배불리 먹는 것. 다행히  어머니 강체질 닮아 반평생 신나게 먹고 튼튼하게 살았다. 나이 들면 싱싱하던 푸른 잎이 소슬바람에도 떨어진다.     어느덧 나의 청장년을 바쳐 매달린 창작예술센터와 화랑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타주로 유학(?) 보내 천문학적인 학비 대느라 허리 졸라매는 것 빼곤 한숨 돌리고 살만했다. 사고는 잘 나갈 때 발생한다. 유방암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재촬영하라는 통보가 왔다. 아찔했다. 죽기만큼 가기 싫은 병원을 또 가야 했다. 왼쪽 가슴에 눈곱 만큼 작은 하얀 점이 보인다. 유방암 초기로 진단, 일사천리로 수술받고 방사선치료를 12주 받았다,   대학 다니던 딸이 기절초풍해서 달려왔지만 수술 다음 날 가슴을 붕대로 꽁꽁 동여매고 회사로 출근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의 절박한 욕망이 불타올랐다. 살아있는 것만큼 찬란한 기쁨은 없다.     건강식 챙기고 산책과 운동하며 반세기 동안 버텨준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수술 후 6년, 재발 위험군에서 해방되는 날 병원에서 졸업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살아있는 자의 입김은 죽음의 공포를 무너트린다. 죽을 만큼 힘든 시련도 세월을 견디면 담담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남의 일처럼 추억의 강에 작은 배를 띄운다.   마태복음 4장 5~6절에는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라’고 미혹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유혹과 시험에 빠진다.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경고와 위험의 메시지를 외면한 채 명예와 물욕의 늪에 빠져 행복,사랑,건강,우정,신의를 등한시하며 산다. 유혹의 신호는 도처에서 발생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면 혼신으로 쌓은 성벽에서 뛰어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몫이다. 목숨줄 붙어있는 동안, 뿜어내는 숨결이 아직 따뜻할 때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고심한다.     이번 겨울은 모질게 길고 다가오는 시간은 더 춥고 흔들릴지 모른다. 바람 같은 목숨을 영원으로 착각하고, 사랑하며 배신하고, 약속을 등지며 갈대처럼 흔들리는 우정의 갈피 붙잡고 그대가 있어 봄 햇살처럼 따스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행복은 순간이다. 별처럼 반짝이다 구름처럼 흘러간다.  돌아서서 흐느끼며 슬퍼하지 말고, 캔버스에 지워진 사랑의 흔적 만지작거리지 말고, 무언가 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작아지고 부서지는 모습에 실망하지 않고, 달력의 마지막 장은 찢지 말고, 추억이 마침표 찍을 때까지 서랍에 보관해 두리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용기도, 작은 유혹을 견뎌낼 인내심 없어도, 평지에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지 말기를.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성전 꼭대기 유방암 정기검진 유방암 초기

20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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